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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EKBEOM CULTURAL FOUNDATION

    2023년 8월 : 윤준희, 임국정, 한상호, 김강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256회 작성일 23-08-0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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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가 간도로 이송하던 15만원을 탈취한 사건의 주역인 독립유공자, 윤준희(1963년 독립장), 임국정(1963년 독립장), 한상호(1963년 독립장), 김강(1995년 독립장선생2023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함북 회령 출생(1895)인 윤준희 선생은 중국 용정촌으로 이주하여 서전서숙*(瑞甸書塾)에서 신학문을 수학했고영신학교(용정의 교회가 운영하는 기독교 계열의 민족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며 민족교육을 위해 노력했다.

     

    서전서숙 만주로 망명한 이상설(1962년 대통령장), 이동녕(1962년 대통령장등이 한인 자제들을 교육하고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설립한 민족교육기관

     

    한상호 선생(1900함북 경성)은 중국 연길현 명동중학교를 졸업하고룡소학교의 교원으로 재직하며 한인 청년들의 민족정신 교육에 힘을 썼다.

     

    임국정 선생(1896년생함남 함흥) 창동학교에 수학하며 민족의식을 길렀고독립전쟁을 위해 동림무관학교(東林武官學校일제와의 독립전쟁에 필요한 장교들을 양성하기 위해 이동휘와 이종호 등이 중국 왕청현에 설립한 무학교) 교하였으나학교는 탄압과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폐교했.

     

    윤준희·임국정·한상호 선생(이하 세분”)과 북간도 청년들은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무장투쟁을 통하여 독립을 달성하고자 비밀결사인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을 조직했다.


    철혈광복단 : 1911년 초 이동휘가 간도에 왔을 때 조직한 광복단(光復團)과 러시아 지역에서 1917년 2월 혁명 이전 조직된 비밀결사인 철혈단(鐵血團)이 통합·조직된 단체


    국내의 3·1만세운동은 북간도에도 소식이 전해져 북간도 3·13만세운동으로 이어졌으나 태극기를 흔들며 평화롭게 만세운동을 펼치는 학생 등이 무차별 진압되어 13명이 순국하고, 30여 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한 것을 목격한선생들은 오로지 무장투쟁을 통해서만 조국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무장투쟁에 필요한 무기를 구하기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한상호 선생은 한인 청년들과 함께 호르바트 부대로 파견되었고임국정 선생은 대한국민의회(1919년 3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건립한 임시정부 성격의 단체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통합)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무기 구매 활동을 이어갔으며윤준희 선생은 중국과 러시아 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각자의 역할을 맡아 차근차근 조국 독립을 준비했다.

     

    임국정·윤준희 선생은 대한국민의회 소속의 김하석과 함께 군자금 모집을 위해 조선은행 자금을 탈취할 계획을 논의했고해당 계획은 조선은행 회령지점 서기로 근무하던 전홍섭과도 조율되었다.

     

    1920년 1월 4일 일화 15만원을 운반하는 호송대가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북간도 용정을 향해 출발했고오후에 간도 용정촌(龍井村부근의 골짜기에서 준비하고 있던 선생들은 도착한 호송대를 습격해 자금을 탈취하는데 성공했.

     

    일화 15만원은 현재 화폐가치로 정확하게 환산하기는 어려우나 당시 소총 5천정과 탄환 50만 발을 구매 할 수 있는 금액으로 만주지역의 독립군 모두를 무장시키고 더 많은 부대를 추가로 조직 할 수 있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선생들은 탈취한 자금을 대한국민의회의 선전부에 헌납하기로 하고, 1월 23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다음 날 대한국민의회 서기이자 철혈광복단 단장인 전일(2007년 독립장)을 만나 구체적인 사용계획(무기구매사관학교 건립 등)을 수립했다.

     

    임국정 선생은 러시아 군인과 약 3만 2천여 원을 무기와(소총 1,000자루탄약 100상자관총 10) 거래하기로 합의했다이를 주선한 중개인 엄인섭은 임국정 선생에게 접근해 무기 밀매를 알선하는 한편이 정보를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총영사관에 근무하는 기토 가쓰미에게도 알렸.

     

    1월 31일 새벽일경은 숙소를 포위하고 잠들어 있던 선생들을 급습했다선생들은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체포되어 블라디보스토크에 정박 중인 일본 군함으로 압송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재판을 위해 다시 함경북도 청진으로 이송됐다.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 1심에서 임국정·윤준희 선생은 사형한상호 선생은 무기징전홍섭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이어진 2(경성복심법원)과 3(경성고등법원)에서 세명의 선생들은 사형을 전홍섭은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1921년 8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평안도 출신의 김강 선생(출생년도 미상)은 숭실학교 재학 중 ‘105